시장이 아닌 소비자 '시선' 바꿨지만, 안전성 우려 등은 '숙제'
GLP-1을 맞지 못하면 '가난한 뚱뚱이'라 불리는 현상도 초래
1998년 비아그라(실데나필)가 등장했을 때 제약산업은 '생명을 살리는 약'이 아니라 '삶의 질을 파는 약'으로 블록버스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뒤이어 한국MSD의 '프로페시아'(피나스테리드)는 탈모라는, 질병이라 부르기 모호했던 영역을 '치료'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해피 드럭'은 이렇게 태동했다.
비만치료제 삭센다는 새 물결을 일으킨 변곡점이었다. 2018년 3월 국내 출시 후 비만 치료를 향한 인식을 긍정에 가깝게 바꾼 삭센다는 '약으로 살을 뺀다'는 명제를 대중에게 알렸다.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 기준 첫해 약 75억원에서 2019년 425억원으로 1년 만에 다섯 배 넘게 뛰었다.
코로나19로 2020년 368억원, 2021년 362억원으로 잠시 주춤했지만, 2022년 589억원, 2023년 668억원으로 다시 치솟으며 5년 넘게 국내 비만치료제 시장 1위를 지켰다. 그 뒤를 같은 회사의 '위고비'와 경쟁자 릴리의 '마운자로'가 분기 4000억원 이상 시장으로 키웠다. 삭센다는 위고비 등장 이후 정점 대비 96% 추락하며 무대에서 내려왔지만, 삭센다가 연 문으로 들어온 후발 제품들은 아예 문을 떼어냈다.
'범용'과 '생활 치료'의 시발점 만든 GLP-1
GLP-1을 1차원적으로 보면 기존 해피 드럭의 연장선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방향성이 미묘하게 다르다. 비아그라는 특정 상황의 특정 기능을, 프로페시아는 모발이라는 특정 부위를 겨냥하는 형태다. 타깃 성별과 상황이 명확하다. 필요할 때만 복용하고, 약을 복용하는 사람의 일상은 변화하지 않는다.
반면 GLP-1은 식욕이라는 인간의 원초적 욕구를 건드리는 모호함이 핵심이다. 식사량과 식사 패턴, 음주, 그로 인한 체형과 대사 지표, 나아가 자기 인식을 바꾸는 약이다. 모호한 타깃으로 범용 가능성이 높은 해피 드럭이다.
앞서 언급한 데이터도 이 차이를 뒷받침한다. 마운자로의 고용량 전환 패턴은 환자들이 저용량을 단기복용한 뒤 치료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유지·증량 단계로 들어가 투여를 생활화하는 단계로 진화한다. 주1회 주사라는 편의성이 오히려 습관화를 만든 셈이다. 매일, 매시간 먹을 필요가 없으니 신경을 쓰지 않게 되는 셈이다.
적응증의 확장성도 GLP-1이 해피 드럭으로서 가치를 높이는 요소다. 위고비는 'STEP 1' 임상에서 68주간 평균 14.9%, STEP 5에서 15.2% 체중을 줄였다. 여기에 당뇨가 없는 심혈관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한 'SELECT' 임상에서 주요 심혈관계 사건(MACE)을 유의미하게 줄이면서 '심혈관 질환 위험 감소'까지 적응증을 넓혔다. 살을 빼는 과정이 결국 건강이라는 단순한 명제를 강조한다. 건강과 삶의 질 사이의 교집합이 생긴다.
마운자로는 적응증 확장에 더 적극적이다. 'SURMOUNT-1'에서 평균 20.9% 감량으로 우위를 보였다는 점을 앞세우면서, 비만을 넘어 당뇨·심혈관·수면무호흡 등으로 치료 영역을 더욱 넓혔다.
그렇기에 GLP-1은 '해피 드럭'의 새로운 챕터라는 것이 업계의 반응이다. 비아그라나 프로페시아의 '해피'가 결핍을 메우는 만족, 즉 '기쁨'에 가까웠다면 GLP-1의 '해피'는 '건강과 행복'이 겹쳐진 개념이다. 비만이 불러오는 건강 문제를 해소하는 동시에 당뇨·심혈관·대사 위험까지 함께 잡는다.
물론 한국 시장에서는 비만치료제라는 인식이 압도적이지만 그 뿌리에 '당뇨 치료제'라는 정체성이 깔려 있기에 처방에서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했다는 분석이다. 미용 욕망에만 기댄 약이었다면 유행처럼 지나가겠지만 질병 치료라는 의학적 토대가 있었기에 '생활에 편입되는 약'이 될 수 있었다.
실제로 약이 생활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생활과 결합할 때 효과가 커진다는 근거도 쌓이고 있다. 올해 2월 국제 학술지 '란셋 당뇨·내분비학(Lancet Diabetes & Endocrinology)'에 하버드 보건대학원 연구진이 당뇨 환자 9만8000여명을 분석한 연구는 이를 데이터로 보여준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GLP-1 약물과 건강한 생활습관(식이·운동·금연·수면·절주 등)을 병행한 집단에서 심혈관 위험 감소 효과가 한층 증폭됐다.
연구진은 논문을 통해 고효능 GLP-1 약물의 시대에도 생활습관은 여전히 중심에 있으며, 현대 약물의 이점을 크게 키울 수 있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약 하나가 식사·운동·수면·음주를 아우르는 생활 전반과 맞물리며 건강과 행복을 동시에 재설계하는 것, 즉 특정 결핍의 보완재가 아니라 대사 전반의 플랫폼 약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해피 드럭'의 새로운 챕터에 가깝다.
GLP-1이 열어젖힌 '생활 치료의 경제'
한 SNS의 글. 결국 비만은 이제 빈부의 문제로 까지 번지고 있다.
GLP-1이 증명한 것은 매출과 약효만은 아니다. '질병은 아니지만 삶을 갉아먹는 문제'에 환자들이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는 시장 원리를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국내 학회 등을 필두로 '비만은 병'이라는 인식이 자리잡는 가운데, 일반 소비자에게도 '삶의 질' 문제가 경제적 화두로 떠올랐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만치료의 영향력은 의외의 지점에서 확인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일반 식품을 다이어트 건강기능식품이나 의약품으로 오인하게 광고한 5개 업체를 적발해 검찰에 송치했다. 식약처 사례를 보면 적발된 한 업체는 치커리 성분의 고형차에 '위고○○'라는 이름을 붙이고 '먹는 위고비', 'GLP-1 효과', '약국 입점' 같은 문구로 의약품처럼 포장했다. 여기에 '마운프로' 등의 제품을 내놓았다가 철퇴를 맞았다. 또 다른 업체는 '위비고'까지 내놓으며 모사품 경쟁을 벌였다.
같은 해 12월 추가 단속에서도 위고비 명칭·효능을 흉내 낸 일반식품 업체 4곳이 허위·과장광고로 30억원 상당의 매출을 올려 적발되기도 했다. 최근 5년간 일반식품을 다이어트 건강기능식품으로 부당광고한 사례는 3749건에 달했다. 식품 업자들이 위고비·마운자로의 이름값을 도용했다는 사실이 GLP-1이 의약품 시장을 넘어 식품·소비 시장 전반에서 통하는 강력한 브랜드가 됐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이 2025년 12월 발간한 '건강과 라이프스타일을 잇는 웰니스 식품' 보고서는 GLP-1의 확장이 약 바깥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에 쐐기를 박는다. 해당 보고서를 보면 국내 소비자가 가장 신경 쓰는 건강 문제로 '체중 관리'를 꼽은 비율이 2022년 54.0%에서 2025년 66.8%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단백질 음료 시장이 2018년 813억원에서 2026년 8000억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소비자는 약에 이어 식품에도 기꺼이 지갑을 열고 있다.
특히 삼정KPMG 경제연구원은 '체중감량 주사치료제가 열풍인 가운데 관련 부작용 예방 및 시너지 효과를 위한 건강기능식품 수요가 증대'하고 있다고 짚었다. 약이 식욕을 누르자 그 약을 쓰는 사람을 겨냥한 식품 시장이 다시 자라나는 순환구조다.
에스테틱 업계는 기회에 올라탔다. 미국 성형외과 학술지 'Aesthetic Surgery Journal Open Forum'에 2025년 판 연구논문에 나온 '오젬픽 페이스'(Ozempic face) 현상이다. 체중 감량으로 인해 얼굴 지방이 없어지며 노화가 진행된 듯한 인상을 만든다는 내용은 전세계 에스테틱 붐 조성에 일조했다.
국내 에스테틱 관련 학회들은 GLP-1 등을 통한 체중 감량 후 관리를 주제로 한 강좌를 학술대회에서 운영하고 있다. GLP-1 투여를 겁내거나 그럴 필요가 없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얼굴보다 이중턱·팔뚝살 등 체형을 시술 대상으로 강조하는 강의도 늘고 있다.
앞선 논문은 '오젬픽 페이스' 검색 급증이 필러·성형외과 같은 키워드 검색을 끌어올리고 있다며, 'GLP-1 수용체 작용제로 인한 형태 변화가 보고될수록 회춘 시술 수요도 함께 늘어날 것이므로 성형외과계가 이 환자군의 증가에 대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연관산업군이 모두 뻗어 나가는 모양새다.
커진 판 위에서 GLP-1 분야는 스스로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미국 내분비학회는 2025년, 전임상과 초기 임상에서 GLP-1 수용체 작용제가 니코틴 및 알코올 추구 행동과 재발을 줄이는 신호가 관찰됐다고 보고했다. 비만이 일부 중독과 신경회로를 공유한다는 가설 위에서 식욕을 넘어 '의지로 안 되던 갈망' 전반을 다루는 생활 밀착형 치료로 확장될 가능성이 열린 셈이다.
'생활 치료'가 넘어야 할 과제 보이는 안전성, 안 보이는 공포
실제 투여자들의 대표 우려는 '우려 부작용'이다.
다만 GLP-1이 만든 '생활 치료'에는 넘어야 할 과제도 있다. 국내 비만치료제 허가사항은 'BMI 30 이상, 또는 27 이상이면서 고혈압·이상지질혈증·당뇨병전단계·제2형 당뇨병·수면무호흡 등 동반질환이 있는 과체중'으로 정해져 있다. 대한비만학회 2024 진료지침은 한국인의 특성을 반영해 BMI 25 이상에서 생활습관 개선만으로 감량에 실패한 경우 약물치료를 고려하도록 권고한다. 그럼에도 분기 4502억원이 비급여로 움직였다.
이 거대한 수요를 떠받치는 것은 약효만이 아니라 '이 약을 오래 맞아도 괜찮다'는 소비자의 믿음이다. 그리고 그 믿음에는 인식과 실제가 어긋나는 지점이 있다.
대표적인 게 '췌장염 공포'다. 다수의 검색 사이트에서 GLP-1의 연관검색어로 췌장염이 따라붙고, '약을 맞고 췌장염으로 병원에 실려갔다'는 이야기가 돌림노래처럼 돈다. 그러나 임상 근거는 정반대에 가깝다. 현재까지 다수의 대규모 연구·메타분석에서 GLP-1과 급성 췌장염의 위험 증가는 확인되지 않았다. 정작 학계가 드물게나마 주목하는 이상반응은 담낭질환이나 비동맥염성 전방허혈성 시신경병증(NA-AION) 쪽이다. 대중이 무서워하는 위험과 의학이 경계하는 위험이 서로 어긋나 있는 셈이다. 다만 급성·재발성 췌장염 병력이 있는 환자는 여전히 신중 투여 대상이다.
이 간극 자체가 '생활 치료제'가 풀어야 할 숙제다. 약을 오래 쓰게 하려면 실제 위험을 관리하는 일만큼이나, 잘못 자리 잡은 공포를 정확한 정보로 교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또 다른 과제는 의료 현장과 환자 모두에게 작용하는 윤리다. 당뇨 급여 기준을 채우기 위해 제품 전환을 논의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지점은 GLP-1이 넘어야 할 또 다른 벽이다.
결과적으로 GLP-1이 가장 깊게 바꾸고 있는 것, 그리고 바꿔야 하는 것은 시장이 아니라 '시선'일지도 모른다. 비만을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 그리고 이 성장을 어떻게 길게 '끌고 갈 것'인가, 어떻게 비만을 '바라볼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현재까지 GLP-1은 '삶의 방식'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최근 나오는 '예전에는 뚱뚱하면 그냥 뚱뚱이였지만, 이제는 (GLP-1을 맞지 못해) 가난한 뚱뚱이라고 불린다'는 우스갯소리는 GLP-1의 과제를 그대로 보여주는 '씁쓸한 유머'기도 하다.
출처 : 히트뉴스(https://www.hitnews.co.kr)